폰트 저작권 침해라고 연락 왔다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
어느 날 회사나 기관 앞으로 이런 연락이 옵니다. "귀사가 제작한 인쇄물에 당사 서체가 무단 사용됐습니다." 첨부된 자료는 몇 년 전 만든 안내문 사진 몇 장이고, 그 아래 사용료 청구액이 적혀 있습니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막막합니다. 그 글꼴을 누가 어떻게 넣었는지 기억나지 않고, 외주 디자이너가 만든 파일이라 확인할 방법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런데 폰트 저작권은 다른 저작물과 보호 대상이 다릅니다. 이 차이 때문에, 인쇄물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침해가 확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순서대로 보겠습니다.
폰트 저작권이 보호하는 건 '파일'입니다
폰트 분쟁의 출발점은 여기입니다. 대법원은 폰트 파일을 컴퓨터프로그램으로 봅니다.
대법원 2001. 6. 29. 선고 99다23246 판결 서체파일의 소스코드는 "컴퓨터 내에서 특정한 모양의 서체의 윤곽선을 크기, 장평, 굵기, 기울기 등을 조절하여 반복적이고 편리하게 출력하도록 특정한 결과를 얻기 위하여 프로그래밍 언어의 일종인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 언어로 제작된 표현물"이고 "그 내용도 좌표값과 좌표값을 연결하는 일련의 지시,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컴퓨터프로그램에 해당한다.

같은 판결은 그 파일의 어느 부분에 창작성이 있는지도 짚었습니다.
서체파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글자의 윤곽선을 수정하거나 제작하기 위한 제어점들의 좌표값과 그 지시·명령어를 선택하는 것"에 제작자의 창의적 개성이 표현되어 있으므로, "윤곽선의 수정 내지 제작작업을 한 부분의 서체파일은 프로그램저작물로서의 창작성이 인정된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보호받는 것은 파일 안의 좌표값과 명령어입니다. 화면이나 종이에 찍힌 글자 모양 자체가 아닙니다.
이 판결은 폰트 회사 쪽이 이긴 사건입니다. 서체파일의 창작성을 부정했던 2심 판단을 대법원이 뒤집고 다시 재판하라며 돌려보냈습니다. 폰트 파일이 가볍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쇄물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보호 대상이 파일이라면, 침해가 되려면 그 파일을 허락 없이 설치·복제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상대가 보낸 자료가 인쇄물 사진이나 웹페이지 캡처뿐이라면, 그것만으로는 누가 어떤 파일을 컴퓨터에 설치해서 썼는지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벌어지는 상황이 이렇습니다.
외주 디자이너가 자기 컴퓨터에서 작업해 완성된 이미지 파일만 넘긴 경우
인쇄소가 보유한 폰트로 출력한 경우
기관은 결과물만 받아 게시한 경우
이런 경우 우리 쪽에 폰트 파일이 설치된 적이 있는지부터가 쟁점이 됩니다. 상대에게 어떤 근거로 우리가 파일을 사용했다고 보는지 확인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물론 확인 결과 실제로 파일을 내려받아 썼다면 이 방향은 닫힙니다. 사실관계부터 정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폰트를 정식으로 구매해도 확인해야 합니다
폰트를 정식으로 구매했거나 무료 배포판을 내려받았는데, 사용 범위를 넘겼다는 지적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앞의 판결이 힘을 발휘합니다. 폰트 파일이 컴퓨터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컴퓨터프로그램에 관한 다음 법리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대법원 2017. 11. 23. 선고 2015다1017 판결 "복제를 허락받은 사용자가 저작재산권자와 계약으로 정한 프로그램의 사용 방법이나 조건을 위반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사용자가 계약 위반에 따른 채무불이행책임을 지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저작재산권자의 복제권을 침해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계약 위반과 저작권 침해는 다른 문제라는 뜻입니다.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면 형사 고소의 전제도 달라집니다.
다만 전제를 정확히 봐야 합니다. 이 법리는 "복제를 허락받은 사용자"에게 적용됩니다. 처음부터 허락을 받은 적이 없다면 쓸 수 없습니다. 내 상황이 '허락을 받고 범위를 넘긴 것'인지, '허락 자체가 없었던 것'인지 구분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무료 폰트였다면 어디까지 무료인지 확인하세요
무료로 배포되는 폰트라도 사용 범위는 제각각입니다. 개인용만 허용하는 것, 상업적 이용까지 허용하는 것, 인쇄물은 되지만 임베딩은 안 되는 것이 섞여 있습니다.
확인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배포 당시 어떤 조건이 붙어 있었는지.
배포 페이지, 함께 들어 있던 라이선스 파일, 압축 파일 안의 안내문을 찾아보십시오. 몇 년 전 자료라면 배포처가 바뀌었거나 조건이 개정됐을 수 있으니, 그 시점의 조건이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합니다.
둘째, 그 조건에 동의하는 절차가 실제로 있었는지.
내려받는 과정에서 이용 범위를 확인하고 동의하는 단계가 없었다면, 그 조건이 계약 내용으로 편입됐다고 보기 어려운 국면이 생깁니다.
이 부분은 사안마다 판단이 갈리므로, 당시 화면이나 안내문이 남아 있다면 함께 확보해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등록 여부부터 물어보십시오
연락을 보낸 곳이 폰트 회사 본인인지, 권리를 넘겨받은 곳인지, 위임만 받은 대리인인지 확인하십시오. 협상 상대가 달라집니다.
등록 여부도 함께 물어보십시오. 저작권은 등록하지 않아도 발생하지만, 등록에는 별도의 효과가 있습니다.
저작권법 제125조 제4항등록되어 있는 저작권, 배타적발행권, 출판권, 저작인접권 또는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를 침해한 자는 그 침해행위에 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등록된 폰트라면 "몰랐다"는 해명이 곧바로 통하지 않습니다. 과실이 없었다는 점을 우리 쪽에서 보여야 합니다.
등록돼 있지 않다면 이 추정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다만 "등록 안 됐으니 책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름길이 사라져서 상대방이 우리 과실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등록 여부 외에 무엇을 함께 요구할지는 답변서에서 먼저 요구해야 할 네 가지에 정리돼 있습니다.
지금 확인할 것
상대가 근거로 든 자료가 인쇄물·캡처뿐인지, 파일 사용 정황이 있는지
우리 쪽 컴퓨터에 해당 폰트 파일이 설치된 적이 있는지
있다면 어디서 받았고, 그때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조건에 동의하는 절차가 있었는지
해당 폰트가 저작권 등록이 되어 있는지
연락을 보낸 곳이 실제 권리자인지
1번부터 4번까지는 내부 자료와 담당자 확인만으로 상당 부분 정리됩니다. 여기까지 정리되기 전에 사용 사실을 인정하거나 금액을 먼저 제시하지 마십시오. 확인 결과에 따라 다툴 수 있는 지점이 달라집니다.

폰트 청구는 여러 곳에 같은 내용으로 발송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받은 문서의 문구가 일반적이고 우리 사안에 대한 구체적 특정이 약하다면, 그 점도 확인 요청 사유가 됩니다.
법무법인 이현은 받으신 문서와 실제 제작 경위를 함께 확인해, 파일 사용 사실이 있는지부터 정리합니다. 이 단계가 정리돼야 금액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폰트 외에 다른 저작물이 함께 지적됐다면 연락을 받은 뒤 확인해야 할 순서 전체를 먼저 보시는 편이 낫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인쇄물에 글꼴이 쓰인 것만으로 저작권 침해인가요?
바로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대법원이 보호 대상으로 본 것은 서체파일의 소스코드, 즉 좌표값과 명령어입니다(99다23246). 침해가 되려면 그 파일을 복제하거나 사용한 사실이 필요합니다. 인쇄된 결과물만 있는 경우 파일을 누가 어떻게 썼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Q. 외주 업체가 넣은 폰트인데 우리가 책임지나요?
경위에 따라 다릅니다. 파일을 설치해 사용한 주체가 외주 업체라면 그쪽 문제일 수 있고, 우리가 파일을 받아 사용했다면 우리 문제가 됩니다. 계약서에 저작권 보증 조항이 있는지도 함께 확인해 보십시오. 오래된 게시물의 저작권 소멸시효는 기간을 나눠 보는 기준에서 다룹니다.
Q. 정품을 샀는데 사용 범위를 넘겼다고 합니다. 저작권 침해인가요?
이용허락을 받고 계약상 조건을 위반한 경우라면, 대법원은 계약 위반에 따른 책임은 별론으로 하고 복제권 침해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2015다1017). 다만 처음부터 허락을 받지 않은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Q. 폰트 파일을 지우면 끝나나요?
삭제는 앞으로의 사용을 멈추는 조치입니다. 이미 발생했다고 주장되는 부분까지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오래된 사용에 대해서는 기간을 나눠 볼 여지가 있습니다. 오래 사용한 경우 기간을 어떻게 나누는지는 소멸시효를 다룬 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부 이미지는 AI 생성 연출 컷입니다.
